첫째가 30개월쯤 되었을 때 배가 아프다고 했습니다. 워낙 말과 표현을 잘하던 아이이고 꾀병이 없던 아이라 진짜 많이 아픈가 싶어서 하루를 지켜봤는데 계속 배가 아프다고 하여 집 근처 소아과에 함께 갔습니다. 의사는 청진기를 대보더니 장이 활동하는 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고 정체되어 있는 것 같으며 단순 장염인지 확언하기가 어렵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조심스럽게 맹장일 수도 있으니 하루 약을 먹어보고 호전되지 않으면 맹장을 검사할 수 있는 병원으로 가기를 추천했습니다. 머리가 아마득해졌습니다. 이 어린아이에게 맹장이라니 도대체 어떻게 수술을 해야 하는지 그런 걱정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1. 장중첩의 퍼즐 풀기: 원인
저의 바람과는 다르게 하루 동안 약을 먹어도 호전이 없었습니다. 아이는 소극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했고 불안해했습니다. 배가 아프니 평소의 컨디션을 유지하지 못하고 자꾸 언제 낫는지를 물어보았습니다. 다음날 오전 아이와 함께 맹장을 확인할 수 있는 병원으로 갔습니다. 초음파와 CT 등 영상 촬영이 가능한 병원이라 정확한 원인을 알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초음파를 보는데 의사의 얼굴이 심각한 듯 느껴졌습니다. 거의 30분 정도는 본 것 같았고 오랫동안 보는 것이 저를 더 초조하고 불안하게 만들었습니다. 다시 만난 의사에게서 들은 병명은 장중첩이었습니다. 소장이 대장 안으로 말려들어가서 장 활동이 멈춰버린 상태이고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처음 갔던 병원의 의사는 아마 장중첩이 보통 신생아처럼 더 어린 영아에게서 발생하기에 30개월이던 제 아이가 장중첩보다는 맹장이라는 추측을 했던 것 같습니다.
장중첩이 왜 발생하는지 정확한 원인을 파악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아데노바이러스나 로타바이러스처럼 위장관에 영향을 주는 바이러스 감염이 이유가 될 수 있는데 이 경우 장의 림프절이 부어올라있습니다. 다른 원인의 감염이나 염증으로 인해 장의 림프절이 부어올라 발생할 수도 있고 장내 폴립이나 종양과 같은 상태가 때로는 장중첩을 유발하기도 합니다. 일부 어린이는 선천적이나 유전적 요인으로 장의 해부학적 이상으로 인해 장중첩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장중첩은 대부분 영유아에게 발생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른 연령층에서 발생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2. 알아채기 어려운 장중첩의 특징
저의 의사가 아이의 개월수를 보고 장중첩을 특정하지 못한 것 처럼 장중첩은 보통 돌 전 아이들에게서 많이 발생합니다. 돌 전 아이들은 의사표현이 울음과 웃음 등으로만 가능하기 때문에 이 질병을 조기에 발견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배가 아프다고 말해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금 아파하는 이유가 장중첩 때문인지 단순 복통 때문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특히 아이들은 통증의 정도와 위치를 정확히 표현하지 못합니다.
장중첩이 생기면 일반적으로 확인하는 것이 복통이 있는지와 구토를 하는지 그리고 대변의 양상입니다. 장중첩에서 특징적으로 보이는 대변은 바로 혈변인데 묽은 혈액이 아닌 잼처럼 점액과 섞여있는 혈액입니다. 이것은 장중첩으로 인해 혈액 공급이 바뀌면서 보이는 현상입니다. 장 내의 혈관이 압축되어 혈류가 감소하게 되는데 이렇게 되면 결과적으로 장의 내벽의 적절한 혈액 공급이 부족해져서 혈액과 점액이 대변으로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양상이 모든 환아에게서 나타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진단이 더욱 어려울 수 있습니다. 제 아들도 마찬가지로 변은 정상으로 나왔고 혈변의 기미조차도 없었습니다.
3. 장중첩 적절한 치료 방법 탐색하기
장중첩의 여정은 어떻게 끝났을까요? 결론적으로 초음파와 CT를 찍은 병원에서는 너무 어린 아이라 시술을 진행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빠르게 처치하지 않으면 장의 천공이나 괴사가 발생할 수 있기에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하여 대학병원으로 전원 하게 되었습니다. 불안해하는 아이를 달래며 택시를 타고 근처 대학병원 아동 응급실로 향했습니다. 정말 감사하게도 아이가 침착한 상태를 유지해 주었습니다. 아침부터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생전 처음 보는 기계들 사이에서 검사를 받을 때도 울지 않고 잘 견뎌주어 제가 잘 버틸 수 있었습니다.
대학병원에서는 아이의 상태를 확인 한 후 간단한 검사를 거쳐 조영술을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조영술은 일반적으로 장중첩증 치료에 일차적으로 사용되는 방법입니다. 항문을 통하여 공기나 조영제를 넣어 장의 압력을 증가시켜서 장을 풀어주는 방식인데 실시간으로 카메라로 확인하며 진행합니다. 다른 합병증이 없거나 기질적인 원인이 없다면 90%의 성공확률이 있습니다. 대부분은 조영술로 치료가 가능하다는 것인데 만약 이것으로 치료가 안된다면 수술적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수술적 치료는 합병증이 이미 진행되었을 경우나 통증이 너무 심해서 조영술을 할 수 없는 경우 등에 진행하게 됩니다. 개복을 통해 수술을 하게 되면 개복 후 절반 이상은 손으로 장을 풀어서 치료가 가능하지만 손으로도 풀리지 않거나 장 괴사가 진행되어 버린 경우에는 장을 절제하기도 합니다.
아이는 어느새 휠체어에 태워진 채 조영술을 받으러 갔습니다. 그맘때 아이들이 모두 그렇듯 낯선 상황에서 쉽게 통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병원에서는 보호자 2명이 와야 하고 머리와 다리를 잡아줘야 한다고 했습니다. 거기에 아이의 몸을 움직이지 못하게 싸개로 감싼 후 침대에 눕혔습니다. 옆으로 새우 자세를 하고 누운 뒤 작은 관을 항문에 삽입하고 바로 공기를 주입하였습니다. 정말 펴질 때까지 강한 압력이 가해져 아이는 괴로워하고 지켜보는 저도 엄마로서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시술은 금방 끝났고 성공적이었습니다.
발견하기까지 걸렸던 시간과 큰 병원으로 가봐야하나 고민했던 시간들이 치료보다 오래 걸렸지만 치료가 끝나고 나니 아이는 금방 원래의 컨디션으로 돌아왔습니다. 보호자의 역할이 이렇게나 중요하구나 느꼈던 날이었습니다. 아이의 평소 모습을 잘 알고 주의를 기울이고 적절한 판단을 한다면 빠른 진단과 치료를 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비슷한 상황을 겪는 부모님이 있다면 도움이 되었기를 바랍니다.